지난 몇주간 영화 <화차>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죠. 이미 베스트셀러로 화제가 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컨텐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영화 <화차>의 인기 요인은 그뿐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소설을 영화화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죠. 영화 <화차>가 성공했던 요인은 제 생각으로는 소설이 가진 장점, 즉 추리라는 장르를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서 사회의 이면이 가진 어둠과 각 인물의 절망적인 배경이 현대인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만의 장점을 잘 살린 데다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관객들에게 충분한 반응을 이끌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화차>의 등장인물인 차경선이라는 캐릭터가 "도대체 왜, 무슨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살아야 했던 것이며 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건가?"를 추적하다 보면, 그녀에게서 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차경선의 과거, 즉 개인파산, 빚 독촉, 신체포기각서, 신용불량자 등 온통 비극적인 순간들이 보여지면서 매일 아침 신문 사회면에 나 있는 각종 끔찍한 사건 사고를 기억해 내고 관객은 몸서리치게 됩니다. 그리고 관객은 점차 차경선을 좇고 있는 미스터리의 본질이 '실종된 약혼자 찾기'가 아니라, 서서히 희생당하고 급기야 파멸에 이르는 차경선의 일대기가 증폭시키는 공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문에 제가 느꼈던 <화차>의 공포스러운 순간은 유기한 시체가 강물에서 떠오르는 장면보다도 빚쟁이들을 피해 버스터미널로 온 차경선이 결국에는 신체포기각서에 지장을 찍는 순간이나 용산역 엔딩 장면에서 "나는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일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게 되면,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그 현장에 직접 들어가 있는 듯 몸서리치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극중 캐릭터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감정 이입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감정 이입은 영화의 흡인력으로 이어져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식 '사회파 미스터리'가 가진 장점이자 영화 <화차>가 영리하게 잘 활용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사회파 추리소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 이 장르는 단순히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이 벌어지게 된 계기와 살해 동기 등을 추적하면서 모든 사태를 일으킨 사회적 환경까지 아우르는 형태의 추리소설로서, 국내에서는 10년 전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보통 추리라고 하면 '셜록 홈즈' 형태나 <CSI> 같은 범죄수사물을 떠올리지만, '사회파 추리소설'은 대부분 형사나 경찰 대신 현대의 소시민이 직접 주인공이 되서 사건을 파헤칩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매력을 조금 더 만나보고 싶다면 <화차>로 대표되는 미야베 미유키와 <용의자 X의 헌신>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가 국내에선 가장 잘 알려져 있지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 두 편이 있는데요.
하나는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의 <13계단>입니다. 네이버라든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면 독자들의 호평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작품은 소년 범죄, 사형론 등 현대 범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한 사형수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설정인데,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과 과거 소년 시절 저지른 범죄 때문에 사회에서 여러 차별을 받고 있는 청년이 합심하여 무죄를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영화 전공자이다 보니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소설이 술술 읽히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나나 너나 종신형이다. 가석방은 없다"라는 마지막 대사는 두고두고 곱씹게 만드는 명대사이기도 하죠. 일본에서는 단기간에 100만 부가 돌파했다고 하고, 일본의 최대 추리상은 란포 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최근엔 일본에서 <제노사이드>라는 작품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제노사이드>는 일본인의 대학살, 즉 우리네 과거사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작가가 책을 내고 인터뷰에서 '일본인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작년 한해 일본에서 대단히 많이 팔리기도 했고 논쟁도 좀 있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한 작품은 알게 모르게 국내 여성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기리노 나쓰오의 대표작 <아웃>입니다. 기리노 나쓰오는 악마적인 여성상을 통해 여성의 심리를 꿰뚫고 사회에서 처절하게 외면당하는 여성성에 대해 사유하는 작가로 유명하죠. 국내에선 <아임 소리 마마>란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그녀의 실제 인기작은 <아웃>이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앞서 소개한 <13계단>과는 좀 다른 작품입니다. 사건을 추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을 나열하는 식입니다. 정말 현실에서 찌들어 사는 네 명의 기혼 여성이 있습니다. 자식이 말을 안 듣고,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고, 고약한 시어머니 병수발에 힘들고, 빚더미에 허덕이고... 근데 이들이 우연한 기회에 살인 공모자가 됩니다. 바로 남편을 죽이는 일에요. 이후부터는 여성 작가가 쓴 작품답지 않게 그야말로 강력하고 음울합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음울함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작품을 다 보고 나면 <화차>의 마지막 여운은 우습다고 여겨질 정도이니까요. 여러 면에서 <13계단>이 오히려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이 외에도 몇몇 작품이 더 있습니다. <화차>를 보고 일본 미스터리에 꽂혔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이 상당히 많거든요. <화차>는 확실히............지면이 짧은 관계로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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